무슨 근거로 좋은 대접을 받으려 하는가
로마서 1장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 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라
<파리의 여자들>이라는 책에 "테레즈"라는 귀족의 삶이 소개가 된다. 그녀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복잡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단순하다. 우선 출신 성분과 태생이 중요하고 그다음에 자질과 능력을 본다. 그녀의 기준에 따르면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나셨고 능력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성결의 영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고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는 경지인 것이다. 세상에 이런 족보의 사람은 없다.
그런데 좋게 말해서 다윗의 혈통이지, 다윗 사후에 그 왕조는 망조가 들어서 쫄딱 망하고 재산은 한 푼도 없으니 몰락한 왕족이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자랐는데 갈릴리 지역 사람들은 지금도 질이 좋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나왔다고 할 때, 갈릴리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는가?라고 말하는 제자가 있었다. 좋은 것이 하나도 없을 거라고 믿는 동네, 지금 우리로 말하면 어느 동네일까? 사람들이 가기를 꺼리고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우범지대일 것이다. 능력으로 말하자면 성결의 능력으로 죽었다고 살아났다고 하는데 보통 능력을 따질 때, 학벌과 직장을 대거나 자산의 규모나 사업체의 크기를 대는데 비해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하는 쳐주지도 않는 능력을 갖다 대고 있는 것이다.
신분이 왕족이고 능력으로는 죽었다가 살아나는 정도로 강하고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입었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말하는 이 기준을 쳐주지 않는다. 그냥 예수님은 몰락하고 아무것도 없는 집안에서 태어난 찢어지게 가난한 목수 출신의 아무런 배경도 재산도 성취도 없는 백수건달에 말 조심을 안 하고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의 비위를 건드려 십자가에서 개 죽음을 당한 일개 미천하고 무능한 이상주의자일 뿐이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엔 그렇다.
신앙이 없는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렇게 본다면, 예수를 믿는 사람은 어떻게 볼까?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부르셔서 신앙을 갖게 된 우리의 출신을 보라고 했다. 집안이 좋거나 학벌이 좋거나 배경이 좋은 사람이 없다고 했고, 하나님은 약한 자를 불러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가난한 자를 불로 부유한 자를 부끄럽게 한다고 하셨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아주 힘들게 살아가는 지역의 사람들부터 먼저 신앙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약하고 힘이 없고 백도 돈도 없는 사람들이 예수를 잘 믿는다. 세상 사람들 즉, 돈과 백과 힘이 있는 사람들은 돈이 없고, 힘이 없고, 의지할 집안도 없는 사람들이 몸과 마음과 정신이 약해서 마약과같이 신앙에 의지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믿었다. 예수를 믿기 전까지.
그래서 세상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비주류의 삶이다. 세상이 쳐주지 않는 것을 가치 있다고 생각하면서 아무것도 없이 근거도 없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기뻐하고 좋아하면서, 마음 편하게 살아가는 착각과 환상에 빠진 가난하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고 비친다. 그러다가 가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 예수를 믿으면 그 사람의 배경이나 힘이나 재산으로 인해서 예수를 다시 보는 것이다. 그것이 세상의 가치관이다.
그럴진대, 신앙을 갖고 예수를 믿는 것은 가치관이 뒤집히는 일이다. 우리 집안은 아무것도 없는 망한 유교 집안이고 사촌에 팔촌까지 뒤져도 변호사를 하시는 큰 아버지가 가장 성공한 한미한 집안이다.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집안을 소중히 여기면서 제사를 지낸다고 자주 만나고 명절에도 만나서 싸우거나 안 싸우면 고스톱을 치면서 결국 싸우게 된다. 나는 그런 환경에서 자라났다. 우리 집안은 신앙과 거리가 멀고 신앙적인 가치관도 없다. 세상적인 가치인 성공과 돈과 힘을 추구하면서도 그것을 일굴 능력은 없는 그래서 스스로 더 비참해지는 그런 집안이었다. 그런 집안에서 엄마도 없는 나는 보호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기막힌 천대를 받았다. 그야말로 그들이 중요시하는 돈과 힘과 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비참한 환경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나는 아무런 힘이 없어서 대항하지도 못하고 길들어져갔다. 그러다가 어려서 친구를 통해서 교회에 나갔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백이나 돈이나 힘이 없어도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라고 존중해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사랑해 주는 것이었다. 나는 이 예수님이 너무 좋았다. 세상에는 공짜 점심이 없는데 교회에는 모든 것이 공짜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런 조건이 없어도 나는 갑자기 귀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로부터 진정한 신앙을 갖기 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지만, 나는 교회를 다니면서 친절한 대우를 받아 세상 사람들이 나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에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였기 때문이었다. 그 근거는 오로지 성경에 있었다. 그런데 그 성경을 세상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아무것도 없으면서 좋은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와 원가정, 회사 사이에서 일어난 갈등은 아무 백이나 돈이나 힘도 없이 좋은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 나와 세상과의 싸움이 아니었나 싶다. 그들은 니가 뭔데 나한테 좋은 대우를 바래?라는 입장을 취하고 나는 하나님 자녀야라는 마음 심지가 있어서 그들의 하대가 싫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그들과 결별했다. 그리고 나를 지극히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람만 상대를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예수님이 우기는 세상이 쳐주지 않는 그런 기준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믿고 세상의 홀대에 결코 익숙해지지 않았고 나에게 좋은 선택을 꾸준히 해서 20년 만에 나는 친척들이 봐도 놀랄만한 성장을 하고 능력을 갖추게 되었고 좋은 결혼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치 예수님이 정신이 번쩍 드는 말씀을 설파하자 같은 동네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그들의 형제들이 우리와 같이 있지 않은가? 그의 지혜가 어디에서 났는가?라고 믿지 못하듯이 나의 친척들은 나를 보면서 "쟤는 엄마 없이 불쌍하게 자란 아이가 아닌가? 저 모든 능력과 아름다움과 존귀함과 지혜가 어디서 났는가?"라고 다들 놀라워한다. 원래는 귀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나를 귀하게 보고 결국 귀한 사람이 되었다. 그것이 복음의 힘인 것 같다.
로마서 1장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 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라
<파리의 여자들>이라는 책에 "테레즈"라는 귀족의 삶이 소개가 된다. 그녀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복잡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단순하다. 우선 출신 성분과 태생이 중요하고 그다음에 자질과 능력을 본다. 그녀의 기준에 따르면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나셨고 능력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성결의 영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고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는 경지인 것이다. 세상에 이런 족보의 사람은 없다.
그런데 좋게 말해서 다윗의 혈통이지, 다윗 사후에 그 왕조는 망조가 들어서 쫄딱 망하고 재산은 한 푼도 없으니 몰락한 왕족이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자랐는데 갈릴리 지역 사람들은 지금도 질이 좋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나왔다고 할 때, 갈릴리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는가?라고 말하는 제자가 있었다. 좋은 것이 하나도 없을 거라고 믿는 동네, 지금 우리로 말하면 어느 동네일까? 사람들이 가기를 꺼리고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우범지대일 것이다. 능력으로 말하자면 성결의 능력으로 죽었다고 살아났다고 하는데 보통 능력을 따질 때, 학벌과 직장을 대거나 자산의 규모나 사업체의 크기를 대는데 비해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하는 쳐주지도 않는 능력을 갖다 대고 있는 것이다.
신분이 왕족이고 능력으로는 죽었다가 살아나는 정도로 강하고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입었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말하는 이 기준을 쳐주지 않는다. 그냥 예수님은 몰락하고 아무것도 없는 집안에서 태어난 찢어지게 가난한 목수 출신의 아무런 배경도 재산도 성취도 없는 백수건달에 말 조심을 안 하고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의 비위를 건드려 십자가에서 개 죽음을 당한 일개 미천하고 무능한 이상주의자일 뿐이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엔 그렇다.
신앙이 없는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렇게 본다면, 예수를 믿는 사람은 어떻게 볼까?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부르셔서 신앙을 갖게 된 우리의 출신을 보라고 했다. 집안이 좋거나 학벌이 좋거나 배경이 좋은 사람이 없다고 했고, 하나님은 약한 자를 불러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가난한 자를 불로 부유한 자를 부끄럽게 한다고 하셨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아주 힘들게 살아가는 지역의 사람들부터 먼저 신앙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약하고 힘이 없고 백도 돈도 없는 사람들이 예수를 잘 믿는다. 세상 사람들 즉, 돈과 백과 힘이 있는 사람들은 돈이 없고, 힘이 없고, 의지할 집안도 없는 사람들이 몸과 마음과 정신이 약해서 마약과같이 신앙에 의지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믿었다. 예수를 믿기 전까지.
그래서 세상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비주류의 삶이다. 세상이 쳐주지 않는 것을 가치 있다고 생각하면서 아무것도 없이 근거도 없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기뻐하고 좋아하면서, 마음 편하게 살아가는 착각과 환상에 빠진 가난하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고 비친다. 그러다가 가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 예수를 믿으면 그 사람의 배경이나 힘이나 재산으로 인해서 예수를 다시 보는 것이다. 그것이 세상의 가치관이다.
그럴진대, 신앙을 갖고 예수를 믿는 것은 가치관이 뒤집히는 일이다. 우리 집안은 아무것도 없는 망한 유교 집안이고 사촌에 팔촌까지 뒤져도 변호사를 하시는 큰 아버지가 가장 성공한 한미한 집안이다.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집안을 소중히 여기면서 제사를 지낸다고 자주 만나고 명절에도 만나서 싸우거나 안 싸우면 고스톱을 치면서 결국 싸우게 된다. 나는 그런 환경에서 자라났다. 우리 집안은 신앙과 거리가 멀고 신앙적인 가치관도 없다. 세상적인 가치인 성공과 돈과 힘을 추구하면서도 그것을 일굴 능력은 없는 그래서 스스로 더 비참해지는 그런 집안이었다. 그런 집안에서 엄마도 없는 나는 보호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기막힌 천대를 받았다. 그야말로 그들이 중요시하는 돈과 힘과 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비참한 환경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나는 아무런 힘이 없어서 대항하지도 못하고 길들어져갔다. 그러다가 어려서 친구를 통해서 교회에 나갔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백이나 돈이나 힘이 없어도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라고 존중해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사랑해 주는 것이었다. 나는 이 예수님이 너무 좋았다. 세상에는 공짜 점심이 없는데 교회에는 모든 것이 공짜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런 조건이 없어도 나는 갑자기 귀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로부터 진정한 신앙을 갖기 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지만, 나는 교회를 다니면서 친절한 대우를 받아 세상 사람들이 나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에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였기 때문이었다. 그 근거는 오로지 성경에 있었다. 그런데 그 성경을 세상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아무것도 없으면서 좋은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와 원가정, 회사 사이에서 일어난 갈등은 아무 백이나 돈이나 힘도 없이 좋은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 나와 세상과의 싸움이 아니었나 싶다. 그들은 니가 뭔데 나한테 좋은 대우를 바래?라는 입장을 취하고 나는 하나님 자녀야라는 마음 심지가 있어서 그들의 하대가 싫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그들과 결별했다. 그리고 나를 지극히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람만 상대를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예수님이 우기는 세상이 쳐주지 않는 그런 기준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믿고 세상의 홀대에 결코 익숙해지지 않았고 나에게 좋은 선택을 꾸준히 해서 20년 만에 나는 친척들이 봐도 놀랄만한 성장을 하고 능력을 갖추게 되었고 좋은 결혼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치 예수님이 정신이 번쩍 드는 말씀을 설파하자 같은 동네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그들의 형제들이 우리와 같이 있지 않은가? 그의 지혜가 어디에서 났는가?라고 믿지 못하듯이 나의 친척들은 나를 보면서 "쟤는 엄마 없이 불쌍하게 자란 아이가 아닌가? 저 모든 능력과 아름다움과 존귀함과 지혜가 어디서 났는가?"라고 다들 놀라워한다. 원래는 귀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나를 귀하게 보고 결국 귀한 사람이 되었다. 그것이 복음의 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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