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하는 거절
김광진의 <편지>라는 곡이 있다.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괴롭히지는 않겠소
하고 싶은 말 하려 했던 말 이대로 다 남겨 두고서
혹시나 기대도 포기하려하오 그대 부디 잘 지내시오
기나긴 그대 침묵을 이별로 받아 두겠소
행여 이 맘 다칠까 근심은 접어두오
오 사랑한 사람이여 더 이상 못 보아도
사실 그대 있음으로 힘겨운 날들을 견뎌왔음에 감사하오
좋은 사람 만나오 사는 동안 날 잊고 사시오
진정 행복하길 바라겠소
이 맘만 가져가오
기나긴 그대 침묵을 이별로 받아 두겠소
행여 이 맘 다칠까 근심은 접어두오
오 사랑한 사람이여 더 이상 못 보아도
사실 그대 있으므로 힘겨운 날들을 견뎌왔음에 감사하오
좋은 사람 만나오 사는 동안 날 잊고 사시오
진정 행복하길 바라겠소
이 맘만 가져가오
원래 좋아하는 곡이었지만, 곡의 배경을 듣고 마음이 뭉클해졌다. 김광진이 가수로서 뜨기 전에 여자친구의 부모님은 가난한 뮤지션인 김광진을 탐탁지 않아 했다. 그래서 좋은 집안의 좋은 남자와 선을 보게 했고 선을 본 남자도 여자친구를 좋아했다. 김광진은 그 남자를 만나보았다. 그런데 그 사람이 정말 능력 있고 마음이 따뜻한 좋은 사람이라서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미래가 불투명한 자신보다 그 남자와 잘 되는 것이 여자친구에게는 더 나은 삶이 될 거라는 마음이 들었다. 선 본 남자는 여자친구에게 같이 유학을 가자고 했으나 여자친구는 그 사람은 다른 여자를 만나도 행복하겠지만 김광진은 자신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김광진을 선택했다.
김광진과 여자친구는 결혼했고,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김광진은 편지 한 통을 집에서 발견하는 데, 선본 남자가 여자친구에게 보낸 편지였다. 그 내용이 너무 아름다워서 김광진이 곡을 붙여 "편지"라는 노래로 만들어 낸 것이다. 자신도 사랑했지만, 여자친구의 선택을 존중하고 자신의 아픈 마음을 염려하는 여자의 마음을 되레 보듬어 주는 그 남자의 마음이 얼마나 성숙한지 나는 한동안 먹먹한 감정이 들었다. 이렇게 자신을 거절한 여자에게 아름답게 "진정 행복하길 바라겠소 이 맘만 가져가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본다. 이 사람이 편지를 썼을 때는 20대였을 텐데 이 사람은 언제 이렇게 다 성숙했을까? 나는 이 나이에도 이렇게 미숙한데...
유학을 함께 가자는 말에 긴 침묵으로 거절의 의사를 표현하면서 어찌 보면 명확히 말이나 글로 자신의 입장을 표현해서 자신을 배려할 수도 있는 부분에 그렇게 하지 않은 여자친구에 대해 분노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기나긴 그대 침묵을 이별로 받아 두겠소"라고 말하는 사람. 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괴롭히지는 않겠다고 말하는 성품. 나는 아닌 것을 알면서도 인연을 거슬러 해코지를 한 적이 있다. 너무 분하고 억울했기 때문이다. 어찌 이리 한 뼘도 자라나지 못했을까? 나는 안되는 것일까?
"오 사랑한 사람이여 더 이상 못 보아도 사실 그대 있으므로 힘겨운 날들을 견뎌왔음에 감사하오" 그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사랑한 사람이었다고 그 짧은 만남으로 힘겨운 날들을 견뎌왔음에 감사한다고 말하는 사람. 거절당했을 때 이렇게 아름답게 반응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에 한동안 마음이 먹먹했다.
내가 살면서 간접적인 거절의 의사표시를 잘 캐치하고 잘 수용하고 잘 반응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삶이 더 아름답고 덜 고통스러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몇 가지 거절에 대한 이슈가 있다는 것을 요즘 깨닫는다. 이 나이에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나는 정말 늦되다. 나의 표현은 초딩보다 못할 때가 많다. 우선 나는 너무 어려서 거절당하는 삶에 들어갔기 때문에 삶이 거절의 연속이라 그 거절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우습게 생각하면서 상대를 존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를 낳아준 엄마가 돌도 안된 나를 인수인계도 없이 버리고 가고, 아빠는 배고파서 우는 내 귀싸대기를 때려서 분풀이를 하고 할머니가 거두어 가서 먹을 것이 없어서 쌀을 멀겋게 끓여서 먹였고 그 와중에 못된 큰 엄마는 나를 싫어해서 억지로 데리고 있으면서 갖은 구박을 하고 너무 어려서부터 갈 데도 있을 데도 없이 눈칫밥을 먹어야 했던 나는 그런 거절의 눈빛과 거절의 바디랭귀지가 일상이어서 너무 익숙하고 그렇다고 그런 거절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몰랐고 그냥 모른 척하거나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요령만 는 것 같다. 그런데 모른 척과 아무렇지도 않은 척이 상대방의 속을 뒤집는 것 같다.
그 이후에는 새엄마가 노려보고 몰래 입막음하고 뺨을 때리고 아빠는 늘 화를 내고 갈 데는 없고, 나는 한때 주말마다 친척 집을 다니면서 집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 적도 있다. 고모 딸들은 웃으면서 "이제 오지 마~"라고 말하고 작은 아빠는 왜 자꾸 오냐고 역정을 냈다. 나는 갈 데가 없고 집에서는 거절의 냉기가 늘 흘렀다. 10살도 채 안 된 나는 추운 날에도 얇은 잠바를 입고 동네를 뱅뱅 돌았다. 내 존재를 거절하는 계모의 냉기가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런 거절 받는 삶의 연속선상에서, 비밀 언덕이 없는 삶에서 어찌 저 사람은 나를 거절하니 그것을 존중하고 내가 이렇게 해야겠다 하고 대처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까? 부모는 서로 원수보다 못하게 노려보고 욕을 하고 싸우는데, 아예 처음부터 사람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고 거절은 하지만 너 자체를 거절하는 것은 아니라는 고난도의 기술은 보지도 못하고 자랐다.
아마 편지를 쓴 선을 본 남자는 어려서부터 안정적인 집안에서 돌봄과 배려를 받고 자라고 자신의 비빌 언덕이 있었을 것이다. 거절을 받으면 한발 물러서고 행동과 눈빛을 통해서 이 사람은 아니구나 하고 거절의 반응을 수용하고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어려서부터 성숙하게 연습할 기회가 많았는지 모른다. 내가 어려서부터 배운 것은 모든 사람이 다 나를 거절해도 붙어 있어야 하고 미워하면 할수록 내가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잘못된 생각은 내 삶을 더 비참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거절당해도 물러설 데가 없는 막막한 삶, 거기에서 남편은 나를 구원해 주었다. 남편은 모두가 싫어하는 나를 사랑해 주고 나를 가르쳐 주고 도와주는 유일한 타인이었다. 남편은 눈빛이나 행동으로나 말로 한 번도 나에게 거절감을 주지 않았고 그저 가슴 아파하면서 가르쳐 줄 뿐이었다. 워낙 병이 깊어 잘 따라가지 못하는 나에게 평생에 걸려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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